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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itage of Korean Independence
광복회는 나라와 겨레를 위해 국민화합을 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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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중국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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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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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중국방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참된 지성인
라용균
(羅容均, 1895-1984, 정읍)
어려서는 향리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서울로 올라와 종로에 정착했다. 1918년경 일본 동경 유학 중 백관수, 김도연 등과 함께 비밀 화합을 통해 대대적인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할 계획을 세우고 ‘2·8 독립 선언’을 통해 구현했다. 2·8 독립 선언에서 재정 분야의 책임자였던 그는 거 사 뒤 관련자가 체포되자 신변에 위협을 느껴 그해 4월 상하이로 망명했다.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임되었고 법제위원과 특별위원 및 정치분과위원 등을 역임하 면서 입법 활동과 독립운동을 계속 추진했다. 대의원으로 활약하면서 보천교에서 받은 5만 원의 독립운동 자금을 임규를 통해 전달하기도 했다. 1922년 1월에는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 린 극동인민대표회의에 이동휘, 여운형, 김규식 등과 함께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독립을 호소 했으며, 같은 해 5월에는 국민대표회의 준비위원에 선임되어 독립운동을 위해 힘썼다. 광복 후에는 제헌국회의원, 보사부장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2022.01.06
광복군
조선의용대 총무조장, 임시정부 정원의원
이종희
(李鍾熙, 1890-1946, 김제)
일찍이 만주를 거쳐 광동에서 의열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중국의 황포군관학교 제4기를 졸업하고 상해 남경에서 항일 활동을 전개했다. 1932년에는 중국군 부대 상위연장으로 복무 하면서 남경에서 의열단 간부를 양성하기 위하여 교관을 맡기도 했다. 1936년 2월에는 민족 혁명당에 입당하여 군사국 특무부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일제 요인 암살 등을 지휘했다. 1938년 10월에는 김약산·박효삼·이익성·김세일 등과 함께 조선의용대를 조직하여 조선혁 명청년들에게 정확한 전투적 정치 노선을 제시했다. 1942년 4월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 입됨에 따라 광복군 제1지대의 소교로 임명되어 총무조장으로 복무하였다. 당시 중경에 있었 던 광복군 제1지대 본부에서 주로 각 구대의 공작 활동을 지휘 감독하다가, 초대 지대장인 김 약산의 뒤를 이어 제2대 제1지대장을 역임했다. 1942년 10월에는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의 의정원 전라도 의원선거회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광복 시까지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과 광복군 고급 참모로서 항일투쟁을 계속하였으며, 귀국 도중 선중에서 별세했다.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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