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정현섭관리자2022-01-06조회 983
독립을 향한 멈추지 않는 열정과 헌신 정현섭
鄭賢燮, 1896-1981, 김제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으며, 7월 미국의회사절단이 내한했을 당시 일본의 침략상을 알리 는 활동을 하다가 일제의 추격을 받자 상하이로 망명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했다. 1930년에 ‘남화한인청년연맹’을 조직함과 동시에 백범 김구와 모의하여 ‘서간단’을 결성했고, 친일파의 숙청을 감행하는 등 본격적인 무력 항쟁을 도모했다. 1931년 1월에는 각국의 무정부주의자 들을 구성원으로 ‘흑생공포단(BTP)’을 조직해 일본 영사관과 병영에 폭탄을 던지는 등 무력 항쟁을 이어갔다. ‘중한청년연합회’를 결성하고 『항쟁시보』를 발간해 한중 공동 투쟁을 이끌 어냈으며 1973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한중합동유격대와 전시공작대를 조직해 일본군 내 한인 학도병 탈출 공작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광복군 현지 책임자로 주중 미 공군에 미·영 포로수용소의 소재지를 확인·보고하는 정보 활동에 기여했다. 광복 후에는 양일동, 윤 제술, 장준하 등과 민주통일당을 창당하여 최고위원과 상임고문으로서 반독재 민주 회복 투 쟁을 벌이다 1981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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