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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itage of Korean Indepen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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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3·1운동
이기송
관리자2022-01-06조회 521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전개한  이기송

李起松, 1888-1939, 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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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3일 둔남면 오수리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 그는 오병용· 이만의를 비롯하여 천도교·예수교인들과 연락하여 장날을 기하여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전개 하기로 결의하고 이날 오후 2시 장터에 모인 군중들 앞으로 나아가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군 중들도 따라 외치며 장터를 행진했다. 시위 군중이 점점 불어나 800여 명으로 늘어나고 기세 도 오르자, 경찰주재소에서 순사를 파견하여 그를 강제 연행해 갔다. 이에 격분한 80여 명의 만세 시위 군중이 주재소 안으로 몰려가 이기송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자, 당황한 일본인 순 사 촌정이 그들의 위세에 눌려 석방했다. 다시 그를 중심으로 한 만세 시위 군중이 시장으로 돌아와 만세운동을 전개할 때에 그 수가 2천여 명으로 늘어났고, 그들은 시장 내의 일본인 상 점을 완전히 파괴하는 등 운동이 격렬해졌다. 이날 저녁에 남원 헌병 분대와 임실경찰서에서 무장한 병력이 대거 출동하여 시위 대열과 대치하다가 무자비한 발포로 일단 해산되었으나, 시위 군중은 3, 4백 명씩 무리를 지어 이튿날 새벽까지 계속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이 튿날부터 일제가 검속을 단행하여 결국 그는 체포되었으며 징역 7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 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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