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항일
최병심관리자2022-01-06조회 956
끈기와 인내로 유학의 본질을 지킨 최병심
崔秉心, 1874-1957, 전주
조선조 유학의 저명인으로 1905년 전주에 옥류정사를 개설하고 많은 문하생을 배출하여 명 성을 떨쳤다. 1905년 을사늑약이 늑결되자 단식으로 항거하고 토역선참의 격문을 작성하여 도처에 붙이는 등 항거했다. 1912년 호남창의대장 이석용이 전남·북 양도에 걸쳐 일군과 항 전을 계속하며 독립밀맹단을 조직하고 각 지역을 분담하여 활동할 때 전주 지방을 맡아 이석 용의 의병활동을 지원했다. 1918년 옥류정사가 항일 사상의 본거지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함 을 간파한 일제가 옥류정사 일대 1,800여 평을 잠업시험장으로 조성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협박 강탈하려 하자 단식으로 저항하고, 토지강제수용령이 발동되자 결사 항거했다. 이에 일 제가 집 일대에 방화하였으나 ‘불에 타 죽겠다’고 버티므로 당황한 일경들에 의해 구출되었으 며 그후 토지는 수용되고 말았다. 1920년 조희제가 일제의 야만적이고 비인도적인 실상을 담은 『염재야록』을 저술, 발간할 때 서문을 작성한 것을 빌미로 일경에 피체되자 6일간 단식 으로 항거했다. 1942년 일제의 소위 동화정책으로 창씨개명을 강요받았으나 끝내 반대하고 조상의 성씨를 수호하였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