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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꿈꾼 독립운동가
백정기
(白貞基, 1896-1934, 정읍)
이봉창·윤봉길과 함께 ‘3의사’로 불리는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국외에서 활발히 독립운동 을 펼쳤던 그는 1923년 여름 도쿄 조천 수력 발전소 공사장 노동자로 신분을 위장하고 일왕 암살을 계획했다가 동경 대지진으로 인해 실패하자 피난민 대열에 섞여 1924년 4월에 귀환 했다. 같은 해 상하이로 넘어가 이회영, 정현섭, 유자명, 이을규, 이정규 등과 함께 ‘재중국 무 정부주의자연맹’에 가입했고, 기관지인 『정의공보』를 비밀리에 발행했다. 1932년 상하이에 서 ‘자유혁명자연맹’을 조직한 다음 ‘흑색공포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조직을 강화하여 대일 투 쟁을 전개했다. 이듬해인 1933년에는 이강훈, 원심창, 유기문, 이용준 등과 규합해 상해해방 연맹을 결성하고 몇몇의 아나키스트들과 중국 주재 일본 공사 아리요시 아키라를 암살할 계 획을 세웠으나 밀정의 신고로 거사 직전에 체포당하여 무기징역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폐 병이 악화되어 1934년 6월 순국했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2022.01.06
의열투쟁
행동하는 저항주의자
이 기
(李沂, 1848-1909, 김제)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하여 학문의 조예가 깊었던 그는 반계 유형원과 다산 정약용에 관심 을 기울여 전제를 연구하는 데 힘을 쏟았다.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나자, 양국은 미국의 중재 로 미국 포츠머드에서 강화회의를 열게 되었는데, 나인영(羅寅永)·오기호 등의 동지와 함께 미 국으로 건너가 조선의 입장을 호소하기로 계획하였으나, 일본 공사 임권조의 방해로 좌절되고 말았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그는 한성사범학교의 교관이 되어 구국의 열정에 불타 는 청년들을 교육시켰다. 그리고 1906년에는 장지연·박은식 등과 함께 애국 계몽 단체인 대 한자강회를 조직하여 사회계몽운동을 전개했다. 1907년 나인영·오기호 등과 함께 을사오적 신을 한꺼번에 처단하기로 하고 나인영·오기호 등과 자신회를 조직하여 거사를 시도하였지만 일부 동지들과 함께 피체되고 말았다. 1907년 당시 재판소인 평리원의 판결에서 7년 유배형 에 처해졌던 그는 전라도 진도(珍島)에 귀양갔다가 얼마 후 풀려났다. 그후에도 서울에서 호남 학회를 세워 애국계몽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던 중 1909년 세상을 떠났다. 1968년에 건국훈 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2022.01.06
의열투쟁
일제의 회유책을 뿌리치고 순국한
장태수
(張泰秀, 1841-1910, 김제)
조선 말기의 문신·순국지사이다. 186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전적·예조정랑·지평· 정언·장령을 역임했다. 1867년 양산군수로 임명되자 5천 냥의 공금으로 양병을 했고, 1872 년에는 고종을 수행하여 송도에 다녀왔다. 병조참의 돈령부도정, 동부승지, 경연참찬관을 지 내고, 1895년 단발령이 내리자 이를 반대하여 사직하고, 스스로 남강거사라 하고 은거했다. 그 후 중추원 의관을 거쳐 시종원 부경에 올랐다.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여 나라 가 망한 후 일본 헌병이 그를 회유하기 위해 은사금을 전달하자 이를 거절했다. 일본헌병대가 세 아들을 잡아가고 그도 체포하려 하자 불충과 불효한 죄를 죽음으로 씻는다고 단식을 결행, 선조의 묘에 죽음을 고하고 24일 만에 절명 순국했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 다.
202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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