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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itage of Korean Indepen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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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에 공헌한 법률가
김병로
(金炳魯, 1887-1964, 순창)
젊은 시절 의병으로 활동했던 김병로는 이후에 법조인이 되어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변론에 열정을 쏟았다. 1910년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 후 귀국하여 1919년 경성지방법원 소속 변호 사로서 개업했다. 1922년 11월에 이상재를 대표로 하고 지도급 인사 47명이 조선민립대학 기성회를 발기할 때 발기인으로 참가했으며, 1923년 3월 29일 각계 대표 400여 명이 서울 종로 중앙청년회관에 모여 조선민립대학 기성회 발기총회를 개최하고, 전국적으로 1천만 원 의 기금을 모집하여 재단을 구성해서 민립종합대학을 설립하기로 결의한 대회에서 김성수 (金性洙)와 함께 회금보관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1923년 동료들과 형사변호공동연구 회를 설립하여 수많은 독립운동 사건을 무료 변론했으며, 1927년 2월에 신간회가 창립되자 이에 가입하여 조사부장 겸 회계로 선출되어 활약하다가, 1930년에는 중앙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특히 1929년 11월에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허헌·이인 등과 함께 구 속된 학생을 변호하기 위하여 최대의 성의와 노력을 기울였다. 1946년에 남조선과도정부 사 법부장,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에는 초대와 제2대 대법원장을 역임했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2022.01.06
문화운동
우리말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 준
정인승
(鄭寅承, 1897-1986, 장수)
일제가 한국을 병탄한 후 독립의 길이 국어국문의 수호와 발전에 있다고 생각하고 조선어학 회에 가입하여 사전편찬회의 주무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우리 문화의 파멸을 막는 방법 은 우리말과 글을 지키는 것이라는 신념에서 한글을 연구하기 시작한 그는 1935년부터 기관 지 『한글』의 편집·발행을 맡았고,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수정·기초위원으로도 활동하다가 1940년 이희승과 함께 ‘한글 맞춤법 통일안’ 개정안을 발표했다. 그의 가장 큰 공적은 1936 년 9월부터 1957년 10월까지 21년에 걸쳐 한글학회 『큰사전』(전 6권)을 완간한 것이다. 1942년 10월에 일제가 한국어의 보급과 한국문의 출판을 일체 금지하여 한국어 말살 정책 을 강화하고 한글 연구자들과 한글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조선어학회 운동으 로 피체되어 함경남도 홍원경찰서와 함흥경찰서에서 일제의 잔혹한 고문과 악형을 받았다. 1945년 1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1945년 8월 13일 고등법원에서 상 고가 기각되어 함흥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8·15광복을 맞아 출옥했다. 1962년에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202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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