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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itage of Korean Indepen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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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3·1운동
백용성
관리자2022-01-06조회 481

한국 불교 수호에 앞장선  백용성

白龍城, 1864-1940,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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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며 불교인이다. 16세에 해인사에 입산하여 수도한 후, 전국의 사찰을 돌며 심신을 수련했다. 국권 침탈 후에는 불법에 의해 민족을 구해야 한다는 강한 신 념으로 포교와 민중계몽운동에 힘썼다. 1919년 2월 27일에는 한용운에게 3·1독립만세운동 의 계획을 듣고 이에 찬동하여 자기의 인장을 위탁하여 불교 측의 민족 대표로서 서명 날인하 게 했다. 3월 1일 오후 2시경 인사동의 태화관에 손병희 등의 민족 대표와 함께 참석하여 독 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삼창을 외친 뒤, 일본 경찰에 의해 경시청총감부에 구금되었다가,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1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 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불교종단의 정화를 위해 노력하던 중, 대처승을 인정하는 일본 정부 내무대신 앞으로 건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1921년 3월에는 『금강경』을 번역·간행하고, 이 후 삼장역회를 설립해 수많은 경전을 한글로 번역·간행했다. 1928년에 한국 불교의 사상이 나 수행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경전인 『화엄경』을 한글로 간행하는 기념비적인 일을 해냈 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