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박준승관리자2022-01-06조회 842
3·1운동 민족 대표 33인에 참여한 박준승
朴準承, 1866-1927, 임실
3·1운동 민족 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며 천도교인이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민족 대표 손병희 등과 함께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삼창을 외친 뒤 일본 경찰 에 체포되어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890년 동학에 입교한 박준승은 1892년 삼례에 서 있었던 교조신원운동과 이듬해 원평에서 열린 척왜양창의 운동을 위한 대집회에 참여하면 서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임실의 동학도들과 함께 기포했 으며, 1894년 5월 전주화약 후에는 임실 집강소 운영에도 참여했다. 1903년 손병희의 일본 망명 후 전라남·북도 책임을 맡아 박인호와 항일을 위한 포교에 매진했다. 1904년에 임실 청 웅에서 수백 명을 모아 놓고 폐정개혁을 위한 진보회를 개최하여 48일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 다. 3·1운동으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에는 1926년 천도교 최고 예우직인 종법 사에 추대됐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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