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운동
유지명관리자2022-01-06조회 773
스스로 창의대장이라 칭한 유지명
柳志明, 1882-1909, 고산
충경공 유량의 후손으로 유홍렬의 아들이다. 1907년 8월 한국군이 강제 해산되자 스스로 창 의대장 또는 삼남의병대장을 칭하고 수백 명의 의병을 구성했다. 그해 9월 22일 전북특별자치도 용 담군 건무리에서 일본군과 교전했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용담·고산·은진 일대에서 일본 보 병·기병·헌병 등과 접전했다. 10월 3일 밤에는 정성일·김치삼 등 수십 명을 이끌고 용담군 읍 내의 일본인 거주지에 들어가 일본인 2명을 사살하고, 한국인 경찰 정상권을 쓰러뜨리고 무 기를 탈취했다. 이어서 10월 10일에 유치복 및 동지 3명과 함께 우북면 장암의 이화순 집에 서 군자금 30원을 조달했다. 1908년 군량을 확보해 보관하게 하고 수백 명의 부하를 이끌어 전북특별자치도 용담과 충청남도 은진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많은 성과를 올렸다. 그해 7월 일본 헌병에게 잡혔다가 탈주했으나 1909년 1월 23일에 다시 잡혀 3월에 광주지방재판소 에서 교수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그대로 형이 확정되어 교수대에서 사형 순국했다.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