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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itage of Korean Indepen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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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의병운동
양한규
관리자2022-01-06조회 658

국권 회복에 앞장선 의병대장  양한규

梁漢奎, 1844-1907, 남원


조선 말기 의병장이다. 1891년 선략장군 부사과가 되었으며, 1892년 통훈대부 초계군사 겸 내금위장이 되었으며, 곧 통정대부로 승진됐다. 1895년 일제는 명성황후시해를 자행하고 단 발령을 내렸다. 양한규는 피눈물을 흘리며 살 것을 도모하지 않고 가재(家財) 누만금을 흩어 동지를 규합하니 사방에서 의사 수천 명이 모였다. 이로부터 활, 화살, 총포, 탄환 등을 다수 모아 벽처에 깊이 간직하고 명산대천에 기도하여 거의할 것을 도모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체결되자, 국권을 회복시키기 위해 우국지사와 연락하여 군사를 모았는데 영남·호남에서 1,000여 명이 호응했다. 1907년 2월 12일 남원 진위대 성내 장병이 휴가 나간 틈을 이용해 읍을 점령, 무기를 접수할 계획을 세웠다. 그의 휘하 100여 명의 정예병을 비롯해 참봉 유병 두의 군사 50명 등 많은 의병에 의해 의병대장으로 추대됐다. 13일 새벽 읍내로 진군, 남원 성에 입성해 광한루에 본진을 두고 있던 일본군과 진위대가 의병들의 급습에 놀라 무기를 둔 채 성 밖으로 도주하자, 무기·군수품을 그대로 접수하는 전과를 올렸다. 양한규는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던 중 유탄에 맞아 죽었다.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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