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
석정 황석선생 충의 기적비관리자2021-12-31조회 1422
명칭 | 구분 | 장소 |
석정 황석선생 충의 기적비 | 비석 | 사매면 월평리 693-1, 수월마을 |
❍비 문 : 조선중직대부광릉령남도의병장, 석정황석선생충의기적비
❍소재지 : 사매면 월평리 수월마을 693-1
❍규 모 : 좌대 0.9m, 비 2.1m, 부지 231㎡
❍건 립 : 2003년, 황석선생 충혼비건립추진위원회와 남원시가 공동으로 황의용외 3인 토지에 건립
❍행 사 :
❍운 영 : 문중대표
❍주요공적
-초명 瑛, 字 器寶, 號 石庭, 南原 사람이다.
-1895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의 만행을 저지른 후 친일정권을 사주하여 단발령과 복제개혁을 추진하는 등 조선의 국권을 탈취하려는 침략정책 수행을 가속화하자, 황석은 국권상실의 위기를 절감하고 무장투쟁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1896년 전북도내 유림들에게 通文을 돌려 擧義할 것을 도모하여 실패하자, 羅州에서 奇宇萬이 거의할 때 참여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고, 러일전쟁 직후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일제의 한국 식민지화 야욕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이에 황석은 義로써 賊臣들을 단죄하고자 高光洵·李錫庸 등과 수 차례 거의를 도모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가족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919년 고종황제의 붕어소식에 자결하여 순국하였다.
❍상 훈 : 2002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묘 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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