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처리방침
이용약관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스킵 네비게이션
본문으로 바로가기
탑메뉴로 바로가기
메인메뉴를 생략하고 하위메뉴로 바로 가기
연락처 및 저작권으로 바로가기
들어가기
회원가입
로그인
회원가입
전북특별자치도지부 소개
인사말
연혁
조직
주요사업
관할지회
찾아오시는길
이야기
독립운동 이야기
- 독립운동가
- 이야기
책소개
전북의 독립운동가
전북의 독립운동가
정보관
웹툰
음악/영상
현충시설
홍보관
공지사항
보도자료
행사사진
행사사진(2020이전)
설문조사
공모전
공모전신청
수상작 영상
Heritage of Korean Independence
광복회는 나라와 겨레를 위해 국민화합을 선도합니다.
이야기
이야기
독립운동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독립운동가
이야기
전체
8건
제목
내용
제목+내용
작성자
전체
(14)
순국선열
(6)
애국활동
(0)
기타애국활동
(8)
전북특별자치도의 농민운동
1927년 11월 옥구 서수면의 이엽사 농장에서 일어난 농민항쟁은 무리한 소작료 요구와 일제 경찰의 농민 지도자 검거에 분노한 소작농들의 대표적인 저항운동이다. 초기의 소작쟁의 는 소작료를 내려달라는 내용이 중심이었으나, 1920년대 후반부터는 일본인 농장을 상 대로 한 항일민족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전북특별자치도는 1930년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소작 쟁의가 발생한 지역이다. 주로 평야 지대가 많은 데다가 일제강점기에 자작농은 줄고 소 작농이 늘면서 김제·정읍·익산·완주·옥구 등지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다.소작농들은 1920년대 중반까지 한국인 지주를 상대로 소작권 이동 반대와 소작료 인하 운동을 전개했으나 1920년대 후반부터는 일본인 농장을 상대로 격렬한 소작쟁의를 일 으켰다. 소작쟁의 형태는 주로 시위와 탄원 등이었고, 일시적으로 소작료 납부 거부 동맹 을 결성하기도 하였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자작농이 감소하고 소작농이 증가하는 현상이 가장 심했던 곳은 김제 지역으로 1930년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쟁의가 이곳에서 발생하 였다. 기록에 의하면 김제에서 발생한 소작쟁의는 1926년부터 1939년까지 14년간 총 5,998건이었다. 전북의 소작쟁의는 1933년 소작조정령을 계기로 598건으로 급증하여 1935년에 5,500건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1937년에 4,336건 1939년 1,215건으 로 줄어들었다.1920년대 후반 농민들은 군산을 비롯하여 전주, 김제, 진안, 익산 등지에 약 900여 ha 에 달하는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이엽사 농장에 소작료를 타농장과 유사한 45%로 정 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농장 측은 이를 거부했다. 농민회와 소작농들이 소작료가 감면될 때까지 납입하지 않겠다고 통보하자, 일제 경찰은 농민조합의 주요 인물인 장태성을 검거하였다. 이에 분노한 소작농 500여 명이 경찰서를 습격하였고, 이엽사 쟁의는 시위 농성 을 넘어서 경찰서, 농장 사무소, 수리 조합 등을 집단으로 습격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 쟁의는 소수의 지도자에 의해서 전개된 것이 아니라 소작인이 자발적으로 일제 경찰 에 맞서 적극적으로 항거한 쟁의로서 단순히 일본인 지주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라는 차 원을 넘어 항일민족운동으로 확장·발전했다.일제강점기 동산촌 농장 모습(엽서)
2022.01.06
전북특별자치도의 노동운동
전북특별자치도의 노동쟁의는 일본의 경영주들의 일방적 임금 삭감과 일본인 감시원들의 성희 롱 등의 문제로 시작되었다. 1924년 3월에 일본인 오치아이 정미소 경영주가 한국인 미 선공들의 임금을 일방적으로 1/5이나 내리자,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하고 그로 인해 해고 된 노동자 40명이 정미소를 습격하는 등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은 일제가 쌀을 수탈하기 위해 개발한 항구로서 어업 선박 및 관련 업종, 제조업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많아 노동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된 곳이다. 당시 군산 지역의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 조건과 차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일본인 기업에서 일하 는 경우가 많았다. 군산 노동자들은 좀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위해 개항 초기부터 부두 노 동자를 중심으로 노동단체를 조직하였다. 군산 최초의 노동단체는 3·1운동의 영향으로 1920년 8월에 결성된 ‘조선노동공제회’ 군산지회였으며, 이 단체의 노동쟁의는 12월 군 산 미곡상 조합 노동자들이 임금 인하에 반대해 벌인 동맹휴업으로 시작하였다. 군산지회는 노동운동을 거치면서 성장한 인물들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1920년대 초기 군산 노동운동의 핵심 인물은 조용관, 장일환, 김영휘 등이었으며, 군산의 여러 분야의 움직임을 중앙과 연결한 인물이 장일환이었다. 이후 군산에서는 군산정미소를 비롯해 아 사히정미소, 가토정미소 등에서 일본인 경영주의 임금 인하에 반대하는 파업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일제의 탄압과 착취에 맞서 한국인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단행하자 일제 경찰 은 이들을 더욱 탄압하였다.
2022.01.06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불의 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대한민국 헌법 전문(1987.10.29)-
2022.03.15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어떻게 구성되었을까?
현대 정부 기구 개요삼권분립, 입법부.사법부.행정부 개설대한민국임시정부는 민주주의에 입각한 근대적 헌법을 갖추고, 민주공화제와 대통령제를 채택하였습니다.입법기관인 임시의정원, 사법기관인 법원, 행정기관인 국무원을 두어 삼권분립 체제를 갖추었습니다.
2022.03.15
한인애국단과 의열투쟁
의열투쟁 시작일본의 침략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임시정부는 여러가지 어려움에 봉착하였습니다.이를 극복하기 위해 의열투쟁을 시작하였습니다.
2022.03.15
이봉창 의사
이봉창"제 나이가 이제 서른한 살입니다. 앞으로 서른한 살을 더 산다고 해도 지금까지보다 더 나은 재미는 없을 것입니다.인색의 목이 쾌락이라면 지난 30년 동안에 인생의 쾌락이란 것을 대강 맛 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영원한 쾌락을 위해서 독립 사업에 몸을 바칠 목적으로 상해에 왔습니다."그는 1932년 1월 8일 도쿄 경시청 앞, 신년 관병식에 참석하고 돌아가던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살아 있는 신이자 국가로 추앙받던 천황을 향한 폭탄 투척은 일본을 충격의 도가니로 빠트렸다.
2022.03.15
윤봉길 의사
윤봉길1908년 6월 21일, 충남 덕산군 현내면에서 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윤봉길.덕산공립보통학교 시절 반강제적인 일본어 공부와 일본인 교사의 억압적인 교육에 반항해 자퇴할 만큼 어릴때 부터 남달랐던 민족의식을 갖고 있었다.월진회를 조직해 야학과 강습회를 열고 문맹 퇴치와 계몽운동에 힘썻던 윤봉길은 독립을 향한 열망을 안고 한인애국단에 가입하며 김구 선생에게 이봉창 의사와 같은 일에 써달라며 부탁한다."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나는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한앤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할 것을 진실로 맹세합니다"-윤봉길의 한인애국단 선서문-
2022.03.15
상해에서 중경까지
고난의 나날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32년부터 1937년까지 일본의 거센 침략을 피해 이동해야 했습니다.중국 국민당 정부의 이동과 함께, 중경에 도착하기까지 임시정부는 고난의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2022.03.15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