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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의 농민운동
관리자2022-01-06조회 253

1927년 11월 옥구 서수면의 이엽사 농장에서 일어난 농민항쟁은 무리한 소작료 요구와 일제 경찰의 농민 지도자 검거에 분노한 소작농들의 대표적인 저항운동이다. 초기의 소작쟁의 는 소작료를 내려달라는 내용이 중심이었으나, 1920년대 후반부터는 일본인 농장을 상 대로 한 항일민족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전북특별자치도는 1930년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소작 쟁의가 발생한 지역이다. 주로 평야 지대가 많은 데다가 일제강점기에 자작농은 줄고 소 작농이 늘면서 김제·정읍·익산·완주·옥구 등지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다.


소작농들은 1920년대 중반까지 한국인 지주를 상대로 소작권 이동 반대와 소작료 인하 운동을 전개했으나 1920년대 후반부터는 일본인 농장을 상대로 격렬한 소작쟁의를 일 으켰다. 소작쟁의 형태는 주로 시위와 탄원 등이었고, 일시적으로 소작료 납부 거부 동맹 을 결성하기도 하였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자작농이 감소하고 소작농이 증가하는 현상이 가장 심했던 곳은 김제 지역으로 1930년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쟁의가 이곳에서 발생하 였다. 기록에 의하면 김제에서 발생한 소작쟁의는 1926년부터 1939년까지 14년간 총 5,998건이었다. 전북의 소작쟁의는 1933년 소작조정령을 계기로 598건으로 급증하여 1935년에 5,500건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1937년에 4,336건 1939년 1,215건으 로 줄어들었다.


1920년대 후반 농민들은 군산을 비롯하여 전주, 김제, 진안, 익산 등지에 약 900여 ha 에 달하는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이엽사 농장에 소작료를 타농장과 유사한 45%로 정 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농장 측은 이를 거부했다. 농민회와 소작농들이 소작료가 감면될 때까지 납입하지 않겠다고 통보하자, 일제 경찰은 농민조합의 주요 인물인 장태성을 검거하였다. 이에 분노한 소작농 500여 명이 경찰서를 습격하였고, 이엽사 쟁의는 시위 농성 을 넘어서 경찰서, 농장 사무소, 수리 조합 등을 집단으로 습격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 쟁의는 소수의 지도자에 의해서 전개된 것이 아니라 소작인이 자발적으로 일제 경찰 에 맞서 적극적으로 항거한 쟁의로서 단순히 일본인 지주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라는 차 원을 넘어 항일민족운동으로 확장·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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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동산촌 농장 모습(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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